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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고찰

미술관 옆 인문학 - 박홍순 (2011), 미술과 인문학의 크로스

by 미국사는남자 2019.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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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서점에 가서 책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 하나 있었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도 있었고,

색감에서 시선을 빼앗긴 이유도 있었다.

안에 들여다보면 세기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들라크루아, 고흐, 고갱, 르누아르, 한국의 신윤복, 백남준까지

단순히 큐레이터가 읊어주는 작가의 배경, 작품의 설명과는 깊이가 차원이 다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접근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을 그림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이 정말 좋았던 책.

그 중에 인상깊었던 몇개만 여기에 남겨 놔야겠다.

 

<웃는 자화상>_램브란트, 1668~69

글쓴이는 우리나라 윤두서의 <자화상>과 비교해서 램브란트의 자신의 말년을 그린 <웃는 자화상>을 보여준다.

당당하고 기품있고 건장한 윤두서의 모습과 상반되게 램브란트의 그것은

푸석푸석하고 구부정하며 웃는것 또한 시원해보이지 않는다.

말년에 부인과 아들을 흑사병으로 잃고 엄청난 빚더미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에 걸려 어찌보면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그 와중에 그가 그린 이 <웃는 자화상> 역설적이기도 하면서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음의 오스카 코코슈카의 평을 들으면 무릎을 치게된다.

"나는 램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을 보았다. 추하고 부서진, 소름끼치며 절망적인,

그러나 그토록 멋지게 그려진 그림을. 그리고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거울 속에서 사라지는 자신을 들여볼 수 있다는 것,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상징인가?"

누구나 남에게 보여지는 자화상, 자서전을 알몸 그대로 내비치려 하지 않고 꾸미고 싶어한다.

그것들을 다 이겨내고 현재의 자신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대하는 용기가 지금 나에게 있는가...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_엔소르, 1899

벨기에의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명. 일명. '가면의 화가'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했는데 이 가면을 '페르조나(persona)'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오늘날 '인격'을 의미하는 'person'이 생겼다는 건 너무도 유명한 얘기다.

셰익스피어는 "이 세상은 무대이며 모든 남자와 여자는 배우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배역을 좇아서 등장했다가 퇴장하지만 사람은 평생동안

여러가지 역을 담당한다." 고 말한다.

요즘 세상에 자기 본 모습을 가면에 감추고 다니는거야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다면 가면을 현실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하게 가면을 벗어던져야 하는가?

우리의 정체성은 가면을 벗어야 획득되는가,

아니면 가면의 표정을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의 답은 참 힘들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가면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진자만이

본인의 정체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을 가질 자격이 있는 것 같다.

 

<감자 먹는 사람들>_고흐, 1885

 

고흐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작품 중 하나.

어두침침하고 조용하기 그지 없는 3대가 둘러앉아 감자로 끼니를 떼우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왜 애착을 가졌는지는 그의 편지에 드러난다.

"나는 램프 밑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이 사람들이 접시를 드는 것과 같은 그 손으로 대지를 팠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

곧 이 그림은 '손과 그 노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스스로의 양식을 구했는가를 얘기하고 있다.

 

(중략)

 

나는 귀부인 같은 사람보다도 농민의 딸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먼지투성이고 누덕누덕 기운 자리투성이인 푸른치마를 입은 농민의 딸이."

그는 손을 묘사하는 일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다. 인물은 흐릿한데 비해 손에 대한 묘사는 정밀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땀과 노동에 대한 댓가는 인정받아 마땅했지만, 당시 구매자들의 취향에 철저히 외면 당한 고흐는

이후에 밝고 환한 색조의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비록 고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을 택했지만, 그래서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한 것 같다.

요즘 젊은사람들에게 주는 그 메시지가 말이다.

또한 글쓴이는 사회구성원 간의 대화의 단절을 강조한다.

삶의 고단함이 앗아가버린 대화와 수동적으로 살아가지는 삶에 대해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라고 얘기한다.

본인이 정말 반복되고 고단하게 살아간다고 느껴진다면 무엇때문인지

그 저변에 깔린 원인을 돌아보고 환기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피지배층이 서로 대화를 하고 모여서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가장 경계했던 지배층.

가장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신분제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마녀사냥도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밖에도 지배와 피지배층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나

현대사회의 문명화된 생활방식에 대한 일깨움을 주려는 이런 노력들을

여러 미술작품을 통해 글쓴이는 소개해준다.

그림은 어떤 글보다도 시각적인 효과 때문에 파급력이 상당하다. 오늘날에 영상이 그러하듯이.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철학적 사고나 사회이면의 현상들, 불만들, 비판을 담은 상상까지 현실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흔들리지 않고 이런 것들을 잘 거르기 위해서는 많이 알고 대화를 많이 해야할 것이다.

다른것보다도 이 책을 접해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이제는 그림을 그림으로만 접하지 않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게다가 이 책 재밌다.

읽는데 비록 꽤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빠져서 읽었던 것 같다.

시각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탄탄하고 보기 쉬우면서도 생각하게끔 하는 책.

<미술관 옆 인문학2>도 있단다.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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