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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자리잡기

미국에서 언어치료사의 삶 (1)

by 미국사는남자 2025.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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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Pixel

어느덧 언어치료사가 되고 (정식 캘리포니아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초등학교, 유치원에서 경험을 해봤지만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다.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매번 반갑게 인사해주는 녀석들을 보면 되려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클리닉 센터에서의 일은 돌이켜보면 육체적으로 피곤할 때가 번번히 있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힘든 것 보다는 개인적으로 아이도 태어나고 집안에 일들이 많다보니 (이사를 한다거나) 상대적으로 힘들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백투백으로 이어지는 아이들과의 세션이 쉬운건 아니지만 나름 중간중간에 리포트를 쓸 시간도 있어서 쉬어가곤 했다. 당연히 아이들이 아파서 안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학교 다니면서는 이론에 집중해서 배웠는데 실전은 또 달랐다. 매일 상대해야하는 다양한 케이스를 보며 그때 그때 공부하고 교재나 교구들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에 좋은 기회가 왔다. 카운티에서 일하는 것. SLP로서 치료를 하지 않는다는게 좋은 건지 안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아이를 직접 상대하기 보다는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가르치고 지도해주는 역할을 하게됐다. 특히 언어발달 관련된 쪽으로 내가 조언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보람이 더 있다. 

이 역시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 아이들을 상대하고 부모와 그럭저럭 소통하는게 참 다행이라고 느꼈는데, 이 일은 주로 다른 전문가 그룹과 함께 일하고 어른들과 얘기해야하며, 가끔 사람들 앞에서 지식을 전달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컨텐츠를 만들고 발표까지 해야하는 일이었다. 첫 6개월이 너무 힘들었다. 회의가 끝나면 개별적으로 동료에게 가서 무슨 내용이었는지 물어봐야 했고 다시 체크해야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단기간에 이렇게 영어가 늘었던 적이 있나 싶을정도로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다. 

가끔 미국에서의 언어치료사는 어떤지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건 매일매일 도전의 연속이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얻어지는 보상은 확실하다. 영주권이 없어서 간절하게 기도했던 날들, 졸업하기 까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걸려서 받았던 고통.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졸업을 할 수 있을지 몰랐던 날들, 첫 직장을 잡고도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던 시간들. 그것들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부딪혀보지 않았다면 몰랐던 세상과 시간들을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지만 사람들마다 성향이 달라서 고통과 그에 오는 달콤함이 더 좋은지, 그저 안정적인 내 세상에 머무는게 좋은지를 잘 알고 도전하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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